햐사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것 - 천아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것

 

오늘은 다른 날과 비교했을 때 보다 더 맑고 좋은 날씨인듯하다. 한 번 인류가 멸망한 이 세계에서 날씨가 좋아봐야 뭐 하겠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신야는 기분 전환도 할 겸, 이 귀여운 아가씨의 운전 연습을 도와주기로 했다. 본인은 자신이 왜 운전 연습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이지만, 주변의 평을 들어보면 한 번쯤 운전 실력을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냥 하면 재미가 없을 테니 차에 타자마자 신야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약간의 장난을 쳐볼까.

 

"아아~, 이따가 구렌 도와주러 가기로 했는데. 핫쨩의 운전 연습을 도와주다가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그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 장난스러운 말투로 그가 평소에도 많이 하던 장난임을 알아차렸지만, 역시 그런 말을 들으니 자존심이 상했는지 햐사는 신야에게 자신의 운전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보라는 말과 동시에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살살 가도 될 법한데, 시작부터 과격한 운전 솜씨를 보여주며 조수석에 앉아있던 신야는 방금했던 자신의 장난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이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햐사를 부르며 차를 세우게끔 하였다. 핫쨩, 터프하네...~. 아마 아까 했던 말 때문에 더 과격하게 한 것 같다. 이 상태로는 도와주려다가 되려 본인이나 운전을 하는 햐사나 다칠 수 있다고 생각한 신야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주변에는 당연하게도 사람 한 명, 심지어 흡혈귀도 없는, 정말 운전 연습하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그런 아무것도 없는 도로 위에서 신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슈퍼카였다. 이 차는 안 어울리게 왜 이런 곳에... 뭐, 아무렴 어때. 이제부터는 우리가 타고 갈 차인걸. 그렇게 혼잣말을 하던 신야는 그 차가 실려있는 수송차 쪽으로 다가갔다. 자신의 운전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는지 그 아쉬움이 표정에 가득 담겨있는 햐사는 신야가 향하는 쪽을 바라보며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신야, 갑자기 그 차는 왜..."

"아, 핫쨩. 재미없는 운전 연습은 뒤로하고 드라이브나 할까~?"

 

재미없는... 그래,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였구나. 그 말을 듣고 뾰루퉁해지는 그녀를 보고 잠깐 당황하는 신야였다. 그런 뜻이 아니라며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변명을 해 보이지만 통하진 않은 모양이다. 됐어. 그래서 어디로 갈 건데. 기분이 풀리진 않았지만, 신야와의 드라이브라니 이런 기회는 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조용히 신야의 옆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본인은 운전을 얼마나 잘 하기에 나에게 그런 소리를 했는지 봐주겠다'라는 표정으로 신야의 답을 기다렸다. 신야는 옆자리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웃으며 살짝 무시하고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구렌을 도와주러 갈 거라는 답을 하였다. 구렌을 도우러라... 사실 햐사는 딴 생각을 하느라 신야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날씨, 신야와 단둘이, 좋은 차로 (훔친 거지만) 드라이브를 하는데 임무나 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대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너무 욕심 부린 걸까나. 그 주제가 아니면 대화를 잘 못 이어가긴 하지만. 이렇게 혼자 고민하던 햐사는 신야가 자신을 몇 번이고 불렀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햐사가 임무에 관한 심각한 고민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햐사에게 괜찮냐고 물으며 걱정을 했다. 신야가 걱정을 해주니 좋기는 하지만 아까 같은 고민을 하느라 못 들었다고는 말 못하지. 햐사가 애써 괜찮다고 하는 게 눈에 보였는지 신야는 약간의 장난을 쳐볼까 하는 생각인 것 같다.

 

"미안, 생각할게 있어서. 그래서 무슨 이야기 중이었어?"

"정말, 하나도 안 들었나 보네. 지금 이대로 도망가는 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있었는데~."

"응...?"

 

그의 말을 듣자마자 햐사는 놀란 감정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당황했다. 분명 신야의 표정을 보면 이건 농담이고 장난이다. 그런데도 놀랐던 건 신야가 장난으로라도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쳐줘야 할까. 사실 신야는 햐사가 어떤 반응을 보여도 즐거워할 사람이라 어떤 답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는 햐사도 재밌어 하고 있다. 아까 뭐에 대해 고민하길래 그리 심각했는지 신야는 자신이 구렌을 도우러 간다는 말에 대한 고민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너무 임무와 관련된 대화만 해서 그런가 싶어 조금 심하다면 심한 장난을 치긴 했는데, 아까까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햐사가 웃으며 답하는 걸 보니 그런 고민은 아닌 것 같다.

 

"갑자기? 히이라기 소장님께서 흡혈귀와 싸우는 게 무서워졌나 보네?"

 

흡혈귀보단 죽는 게 무섭다는 말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 그래도 아까보다 편안해진 듯한 햐사를 본 신야도 어딘가 편해 보이는 듯 둘의 평소 분위기를 되찾은 것 같다. 이제 일 얘기는 그만두고 도착할 때까지 드라이브를 즐겨보자는 신야의 말과 함께 둘 사이에 있던 무거웠던 분위기는 한층 가벼워졌다. 배경이야 어찌 되었든 둘의 첫 드라이브는 남들과는 달랐다. 본인들이 처한 상황부터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하지만 평범하지 않으면 어떠내는 듯,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특별한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둘을 태운 차가 구렌 앞에 멈춰 서자 구렌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인 듯 그들의 쳐다본다.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신야와 그의 옆 좌석에서 나와 기껏 도와주러 왔더니 표정이 왜 그러냐는 말을 하는 햐사를 본 구렌은 오늘도 조용하지 않은 하루를 보낼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을 쉬기 시작하지만, 속으로는 와준 것에 기뻐할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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